베를린 우리집 홍수 사건 (첫번째 이야기)
한국에서도 집 안에서 물 새는 것 때문에 고생을 조금 했던 적이 있다.
오금동에 살 때 아래층 혼자남이 천장에서 물 떨어져서 밤에 잠을 못 잔다고 아침 댓바람에 잠옷차림으로 주차장까지 쫓아 나와 나에게 하소연을 했더랬다.
그래서 우리집 화장실 바닥을 다 갈아엎고 수리하느라 화장실을 아예 못 쓰고 거실 또한 먼지 때문에 가구와 살림살이를 포장해 놓느라 생고생을 했었는데...
근데 더 웃긴 일은 처음 화장실 공사하던 업체에서 제대로 하질 않아 아랫집으로 물이 또 샜고 덕분에 한번 더 화장실을 쓰지 못했다. 그 때는 아빠가 집주인 아저씨랑 통화해서 집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밖을 떠도는 2인 1견의 불편함을 호소하여 숙박비 정도의 위로금을 받았다. (아랫집 집주인과 우리집 집주인이 같은 분이라서 가능했던 일)
왜 이런 기억이 새삼 떠오르는가 하면 그때 잠옷차림으로 달려나와 (내가 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듯 ㅋ) 이제 막 시동을 켜고 출발하려는 운전석의 나를 붙잡고 공사 좀 빨리 해달라고 하던 혼자남의 간절함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는 일이 나에게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6월 6일 한국은 현충일, 베를린에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다고 하여 바르셀로나팬들이 쿠담 거리를 점령했던 어느 들뜬 토요일. 나 또한 축덕 남편의 열정을 에너지 삼아 아침부터 올림피아 슈타디온으로 달려가 연신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고 마침 연락 온 친구부부와 외식까지 하며 즐거운 휴일을 보냈다. 우리는 충분히 놀았으니 이제 가서 집순이를 면치 못한 반려견 겨울이를 달래주자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발이 금새 축축한 것이 겨울이가 실례를 해놨나 싶어 자세히 방바닥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화장대 밑이 물로 흥건한 것이었다. 이게 뭐지 싶어 두리번 두리번 대는데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양동이를 가져다 받쳐 놓고 이 정도 물이 떨어지는 속도면 양동이 몇 개로 버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점점 냇물 흐르는 소리 나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화장실과 부엌 사이에 있는 환풍구 같은 곳에서 계곡에서나 들을 수 있는 청량한 물 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그러더니 집 안에 있는 모든 노출 수도관 (한국과 달리 방 안에서 볼 수 있는 수도관들이 몇 개 있다) 쪽에서 물이 새기 시작. 특히 하이쭝(난방장치)이 있는 수도관에서는 시간이 갈 수 록 물이 많이 떨어져서 갖고 있는 수건과 걸레를 다 쓰고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부터 덜컥 겁이 나기 시작. 일단 집주인에게 연락했더니 윗집에 가서 물을 쓰지 말아달라고 해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윗집에 갔더니 우리 바로 윗집은 물론이고 5층 (우리집은 4층)에 있는 집들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나는 수건과 양동이를 사러 마트에 다녀오고 남편은 수건으로 닦고 짜고 닦고 짜고 하느라 육신의 걸레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수건과 함께 바닥에 뻗어 버렸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는데 세면대 위에 걸린 거울 달린 수납장 밑으로 몇 분 마다 한번씩 폭포가 떨어지는 것이다. 깜놀했지만 남편에게는 비밀로 했다. 어차피 문제는 도처에 있었다. 물난리가 난 시간은 오후 4시경으로 유럽의 이 시간은 햇빛이 매우 뜨겁게 반짝이는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집 발코니로 물이 들이치는 것이 아닌가! 발코니로 나가보니 어딘가에서 부터 시작된 물이 건물 벽을 타고 내려와 발코니에서 부딪혀 톡톡 싱그럽게 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지개를 만들 것처럼... 정말 어이를 상실한 나는 위험한 자세로 고개를 빼고 건물 윗쪽을 쳐다보았는데 건물 외벽에 물이 샌 자국이 선명했다. 건물이 무너지는거 아닌가 싶어서 매우 겁이 났다. 살림살이가 물에 젖지 않도록 정리를 하고 (그 와중에 간이옷장 하나가 무너져버림 -_-) 도저히 이 집에서 잘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일단 짐을 쌌다.
그동안 집주인이 와서 이리저리 벨을 불러 보고 다니며 하우스마이스터 연락처를 알아내고 그 통에 땅층(0층)에 있는 집까지 물이 타고 내려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집주인이 한집 한집 다 벨을 누르고 다녀서인지 모두들 뛰쳐나와 담화를 나누기 시작. 우리집 앞에서 때아닌 반상회가 열렸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해 수차례 치고 빠지기를 반복. 별 얘기 하는게 아니라 그냥 오랜만에 모두 모여 떠드는 것이 좋은지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 하였다. 그래도 집주인은 열심히 발품 팔아 이 물난리의 원인을 알아냈다. 이렇게 큰 사고를 친 집은 6층인데 그 집 주인이 여행 중이라 집을 비운 상태에서 세탁기와 연결된 수도관이 터졌던 것이다. 결국 경찰관 대동하여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물 흡수 기계로 바닥에 고인 물을 다 빼고서야 겨우 우리집에 내리던 장마가 그쳤다. 그것도 다 그친 것은 아니고 가장 심한 부분 쪽 수도관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떨어졌다. 방 바닥의 라미네이트는 물을 잔뜩 먹어 이미 올록볼록 일어나고 몰딩 또한 버석버석 떨어져 나왔다. 습기와 냄새가 가득한 집에서 잘 수 없어 우리는 밤 12시에 픽업 온 친구부부의 차를 타고 이곳을 탈출했다. 6월 6일 6층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그야말로 666의 저주다. 내 평생 이 정도의 멘붕을 안겨준 사건은 없었다. 이틀 동안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월요일 아침 다시 돌아온 집에서는 쾌쾌한 지하실 냄새가 났다. 방바닥의 삼분의 일 정도는 라미네이트가 울어서 발바닥에 걸리는 수준이었다. 그 당시 부엌은 물이 안 새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다시 보니 군데군데 은근슬쩍 샌 곳들이 몇 군데 더 발견되었다.
물은 일단 멈췄고 이제 가장 큰 문제는 곰팡이이다. 한번 곰팡이가 퍼지기 시작하면 금새 건물 전체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건물 하나가 곰팡이에 먹히면 그것을 되돌리는데 억 대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렇기때문에 물 맞은 곳을 바짝 말린 후 바닥과 벽을 완전히 새로해서 곰팡이가 생길 여지를 주면 안된다. 독일인들은 일처리가 거의 나무늘보 수준으로 느린데 어쩐지 화요일 날 트로켄회사 (건조를 담당하는 회사)에서 직원이 나와 제습기 4대를 놓고 갔다. 제습기는 한국에서 쓰던 제품 보다 강도가 세고 시끄럽고 틀어놓으면 공기가 매우 건조해진다. 숨을 못 쉴 지경. 다른 형태의 고문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인 수요일 보험회사에서 여러 명의 직원들이 나와 손해정도를 살펴본 뒤 목요일에 당장 바닥을 뜯어내기로 했다. 우리집 바닥은 라미네이트여서 뜯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2명의 덩치 큰 아저씨들이 1시간도 안되서 다 뜯어버리고 우리는 시멘트 바닥과 함께 남겨졌다. 먼지 때문에 남편은 남아서 바닥 청소를 하고 나와 겨울이는 다시 친구집으로 대피. 2차 탈출. 남편은 꼼꼼하게 뒷정리를 하고 신문지와 돗자리로 우리가 잠은 잘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았다. 친구부부네 집은 새 집인데가 손님방과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어서 매우 안락했으나 시멘트 바닥이라도 우리집이 최고라는 모토 아래 하룻밤만에 컴백홈 하였다. 그리고 단순한 나와 현실에 순응하여 빨리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픈 남편은 우리집 바닥이 마치 새로 생긴 카페 바닥과 같다며 금새 적응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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