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만난 먼지 다듬이

Posted by 율리앤노브
2015. 8. 14. 00:00 Berlin U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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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만난 먼지 다듬이


아.. 집에 물난리 난지 2달 되가는 시점에 바닥에 깔아놓은 이부자리에서 한 두마리 씩 보이기 시작하던 벌레놈..

그때까지는 밖에서 날아온 하루살이 정도라고 생각하고 손으로 꾹 눌러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두둥! 발코니로 난 문틀에서도 여러마리가 포착되자 뭔가 불안한 마음에 폭풍 검색을 하고 그놈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란 인간.. 하지만 이 벌레놈의 100배 확대 사진을 보자마자 딱 알았다.

 

  '먼지 다듬이'라는 벌레를 아십니까!

너가 우리집에 걔구나! 우리집 불청객의 이름은 바로 먼지 다듬이..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이생키는 물난리 났을 때 물에 젖은 나무 몰딩 안에 보금자리를 꾸민 것으로 추정. 지난 주 한껏 습했던 베를린 날씨 덕에 알에서 깨어난 생키의 새끼들이 온 집안을 휩쓸고 다니기 시작. 벌레라면 진심으로 온마음 다하여 싫어하는 나는 먼지다듬이 카페까지 가입하며 이것들의 박멸에 사활을 걸고 있다.. 카페에는 '먼다'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먼지 다듬이에게 일상을 빼앗긴 사람들의 살아있는 체험담이 가득했는데 그것을 읽고 있자니 난 영원히 먼다에게서 해방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나마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던 욕실에서도 먼다를 발견하자 그야말로 나는 패닉상태에 빠져 눈물까지 흘렸다. (사람이 정신병자가 되는거~ 엄청 어려운 일은 아닌가보다.. 먼지 다듬이라는 문제에 초집중을 하니깐 세상이 먼다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 내 머리도 완전 돌아버리기 직전까지 ㅋㅋ) 해충이 아니라지만,, 1mm 정도의 작은 벌레라지만,, 우글우글 모여있는 그꼴을 보자면 쉬어도 쉬는게 아니고 누워도 잠이 안온단 말이다. 남편은 잘 안보인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먼지 다듬이와의 전쟁에 돌입하다.

난 이미 모든 신경이 먼지다듬이와의 전쟁에 올인된 상태. 정말 지난 주말에는 정신병 걸릴 지경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몇 마리가 나돌아다니는지 쭈그려앉아 확인하고 자기 직전까지 전등 주위로 빛을 보고 날아든 (심지어 날개가 있어서 바닥부터 벽과 천장까지 무시로 이동가능) 먼다생키들 찍찍이로 눌러죽이느라 애먼 남편까지 생고생 시키며... (천장에 붙은 먼다를 찾으려고 몇 분을 고개를 젖히고 있어보니 르네상스 시대에 천장화 그리던 화가님들의 고충을 만분의 일 정도는 알겠더라는;) 아 정말 이게 뭐하는 짓인지 곧 우울증에 발 담글 것 같은 날들. 일단 주말에 약한 살충제를 뿌려놓으니 밖으로 나와 죽어있기는 하길래 그 다음에는 더 강한 살충제를 사다가 거의 한통 다 뿌리고. 그 후에도 살아난 놈들 보며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인가 하는 한숨이. 그 와중에 드디어 물난리로 뜯어낸 바닥을 새 라미네이트로 까는 날은 돌아오고~ 드디어 바닥까지 완성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어 무지 기뻐야 하는 날인데 먼다생키들 때문에 갑갑하기만 하고. 어쨋든 공사는 무사히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먼지 다듬이와의 끝을 알 수 없는 전쟁. 오늘 또 먼다 카페에 들어가 9년째 여름마다 먼다를 만나고 있다는 한 주부의 증언을 보고 헛웃음이 일고. 이 집을 떠나야 영원히 먼다와 이별 할 수 있는 것인가. 찬바람이 불면 먼지 다듬이의 알들은 그 상태로 겨울을 나고 다시 여름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지면 짠~~하고 생일축하 파티한다는 이야기. 나는 니들이 태어나지 않길 바란다. 어차피 찍찍이에 압사 당하는 험한 꼴만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겨울에도 하이쭝을 켜지 않고 이 집을 통째로 얼릴 참이다. 처음에는 미쳐버릴 것 같던 먼지 다듬이와의 싸움도 결국엔 일상이 되어 하나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오후에 한 차례 살충제를 가지고 몰딩을 따라 방역을 실시한다. 그리고 밤이 되어 깜깜해지면 거실 불을 켠다. 그러면 순식간에 거실 등 주변으로 먼다들이 일렬종대하여 몰려든다. 남편이 만들어준 장대 + 찍찍이 라는 무기로 쫘르르르 먼다를 찍어 죽이며 잠깐의 희열을 맛 본다. 그러고 다시 소등. 자기 직전에 5분간 다시 불을 켜고 한번 더 살육. 다음 날 아침에는 몰딩 주변에 약 먹고 나와 죽어있는 먼다 시신 수습. 이것이 벌써 2주가 된 먼지 다듬이와 벌이는 소리없는 전쟁. 승자는 누굴까? 아직은 먼지 다듬이. 먼다는 단 한마리만 살아 있어도 지 혼자 20~200개의 알을 깔 수 있다. 먼다는 힘도 없고 날기는 하지만 그냥 진짜 날기만 하는 수준에 정말로 검정깨 만큼 작은 미미한 존재지만 번식력 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단성 생식 하기 때문에 그냥 딱 한마리만 있어도 순식간에 대대대대가족을 이룰 수 있다. 샤이쎄.. SHIT.. 아주 조금씩 숫자가 줄고 있기는 하지만 몰딩 안에 얼마나 알을 낳아놨는지 알 수가 없어 앞으로 한 두달은 더 관리해야 한다. 그냥 내일부터 영하로 떨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ㅎㅎ 한국 다이소에서 잔뜩 가져온 돌돌이 (찍찍이) 없었으면 큰일 날뻔 했네. 한손에는 살충제~ 한손에는 찍찍이를 들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먼지 다듬이를 꾸욱 꾸욱 눌러본다... (우습게도 먼다를 보면서 나는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1483-1485)'이라는 명화가 생각났다. 남근과 바다거품이 만나 탄생한 비너스... 열기와 습기가 만나 생긴 먼다... 차라리 우리집에서 비너스가 탄생했다면 내가 이렇게 매일 살육에 미쳐있지는 않았을 것을.. 내 삐뚤어지고 잔뜩 꼬여버린 정신머리는 박물관 섬에나 가서 고귀한 그림들로 치유해야겠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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